부모만 아이 마음을 알아주거나, 혹은 아이더러 부모의 뜻을 알아달라고 강요하는 일방통행식 대화로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없다. 상대방의 뜻을 서로 같이 이해해야 공감대가 형성되고 소통하는 상호관계가 성립된다. 아이와 소통하려면 먼저 공감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 봐야 한다.
아이들이 원인불명의 증세로 진료실을 찾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흔한 세 가지 증세가 복통, 두통, 빈뇨이다. 이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복부초음파, 뇌 MRI, 소변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본다. 그래도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데, 심리적인 원인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인 불안이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 마음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때 부모는 으레 신체적인 질병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이런 저런 검사를 해본 후에야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경우 부모들은 “아이한테 잘해주는데 왜 그럴까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라고 말한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에 공감해 주지 않고, 훈계와 설득으로 꾹꾹 눌러버리면 그 감정은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마음속의 어두운 감정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몸부림을 친다. 어두운 감정들은 무시당하면 당할수록 갖가지 불안증세로 감정의 주인인 아이를 괴롭힌다. 현명한 부모는 예민한 탐지기로 아이안에 감춰진 어두운 감정들을 찾아내 ‘공감’이라는 빛을 비춰준다. 그러면 그렇게 드러난 어두운 감정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진다.
나도 가끔 목감기가 아닌데도 원인 모를 목통증이 오래 가는 경우가 있다. 나는 마음의 통 안에 쌓아둔 스트레스가 또 흘러넘쳤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그러면 나는 기독교 찬양을 듣거나 운동을 하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밖으로 발산해 버린다. 이때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병원 일에 너무 지치셨군요.” “아이들 키우느라 많이 힘드시죠?”라며 공감하는 말 한마디만 해줘도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진다.
물론 나는 성인이니 다른 사람이 나의 스트레스에 공감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인지회로가 형성되어 있다.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다. 심리적 원인 대문에 생기는 신체적 증상을 해결할 줄 아는 성숙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경우는 다르다. 아이들은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불안증세로 인해 신체적 증상이 온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예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놀이터나 길가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위험요소도 여기저기 널리 있다. 학원 다니느라 시간의 제약 또한 많다.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대신 감당해 주던 ‘놀이’로부터 아이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핵가족화 때문에 가정에서 깔깔거리며 함께 놀 수 있는 형제자매까지 부족해 ‘놀이’의 본능을 채우지 못한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공감이 더더욱 절실하다. 아이들의 어두운 감정을 공감해 주는 자체만으로도 불안심리를 치료해 주는 효과가 있다. 부모의 공감은 정서불안을 겪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고, 정서적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공감과 소통의 과정을 4단계로 설명해 본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해결책을 찾고자 할 때, 어느 한쪽만 마음의 문을 열어서는 안되고, 양쪽 모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공감다리가 생기게 되고 문제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다. 다음은 공감하고 소통하는 네 가지 단계이다.
1단계 부모의 마음 보여주기
2단계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
3단계 공감다리 만들기
4단계 문제해결책 찾기
부모와 아이, 또는 아이와 다른 어른들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네 가지 단계의 과정대로 대화를 풀어나가면 된다. 문제가 1단계에서 바로 해결되기도 하고 2단계나 3단계에서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마지막 4단계에서 같이 문제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한다.
다음은 네 가지 단계를 거쳐 가면서 문제를 해결했던 이야기이다. 큰딸과 작은딸은 연년생이라서 쌍둥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자존심이 강한 언니는 동생과 옷이나 신발, 양말을 똑같이 신고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빠가 무심결에 키티샌들 두 개를 사왔다. 둘이서 신발을 신고 싸움이 벌어졌다. 동생은 키티샌들을 신고 가겠다고 떼를 쓰고, 언니는 “네가 신으면 내가 못 신잖아!”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1단계: 부모의 마음 보여주기
나 – 너희 둘이서 이렇게 키티샌들 때문에 싸우니 엄마는 너무 속상 해.(엄마의 감정) 너희 둘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기 때문이야.(엄마의 바람) 키티샌들 때문에 둘이 싸우는 것을 보면 아빠도 속상해 하실거야.(아빠의 감정)
2단계: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
언니 – 둘이 같은 신발을 신으면 쌍둥이 소리 들어서 싫단 말이야. 동생이 나랑 똑같은 키티샌들 신는 거 싫어!
동생 – 키티샌들 신을거야! 으앙!
나 – 언니는 지금 키티샌들을 신고 싶은데 동생도 같이 신겠다고 우기니 쌍둥이 소리를 들을까 봐 화가 났구나. 동생은 언니가 키티샌들을 못신게 하니까 우는 거구. 이거 난처하게 됐는 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말 어떡하지?(언니의 마음을 읽어줌)
3단계: 공감다리 만들기
동생은 키티샌들을 신겠다고 떼를 쓰고, 언니는 동생이 신으면 안된다고 계속 운다. 나는 아이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진정할 때까지 차례대로 안아주고 토닥거려 준다. 한참 뒤에 조금 진정 기미를 보이는 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4단계: 문제해결력 찾기
나 – 그럼 좋은 생각 없을까?(아이에게 문제해결책을 물어봄) 엄마는 너희 둘이 키티샌들을 사이좋게 신고 가는 것을 보고 싶은데. 그럼 너무 기쁠거야.(엄마의 부탁)
언니 - (진정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그럼 오늘은 내가 키티샌들을 신고 내일은 동생이 신고 가는 거예요. 어때요?
나 – 그래!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이다! 정말 멋진 걸. 내일은 언니가 양보하겠다는 거구나. 그럼 언니가 동생한테 예쁜 말로 이렇게 부탁해 보자. ‘언니는 오늘 키티샌들이 너무 신고 싶은데 같이 신고 나가면 쌍둥이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 돼. 그러니 내일은 내가 양보해 줄테니 내일은 네가 신을래?’ 라고 말이야.(부탁하는 방법을 가르쳐줌)
언니 – 오늘은 언니가 키티샌들이 신고 싶은데 너랑 쌍둥이 소리를 듣는 게 싫어. 내일 네가 신으면 안될까?
동생 – 응, 그래.(방긋 웃어 줌)
그 후로 언니가 세운 규칙대로 하는 동생, 하루는 언니가 신기로 하고(둘 다 좋아라 하며) 키티샌들을 신고 나갔다. 나는 문제해결책을 직접 제시하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만 수용해 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서로 타협하는 방법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출처: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7단계 대화법